인보길 초대석

[인보길 초대석]"안보불감증, 베트남 패망 때보다 심각"

'친중반대' 남재준 "대통령되면 '국회'부터 해산!"

盧정권 인사압력 거절했다 3년 동안 계좌추적 당해…체제 전복세력, 법 집행 엄정하게

노민호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03.29 21: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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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와 '세월호' 인양, 박근혜 前대통령 관련 문제에 모든 눈이 쏠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이 처한 안보 상황은 19세기 말보다 더 심각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한은 핵무기 기술 고도화와 함께 탄도미사일을 새로 개발 중이고, 중국은 '사드'를 빌미로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주요 전략자산을 한국에 전개, 북한과 중국에 동시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계와 언론계는 '대선'만 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안보 불감증’이 1975년 베트남 패망 때보다 더욱 심각하다며 대선에 도전한 사람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원장을 지낸 남재준 후보다.

지난 28일 선거캠프에서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과 만난 남재준 후보는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일갈했다.

“월남은 1945년부터 지속적으로 내전을 겪었다. 비정규전이지만 전쟁을 한 것. 그러다보니 안보에 대한 국민 의식이 깨어있었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또 했나보다’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이 위기감 같은 것을 느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남재준 후보는 1970년 베트남 전쟁에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 한국의 안보 상황을 우려했다.

남재준 후보는 “특히 ‘태극기파’, ‘촛불파’로 나눠진 현상은 매우 위태롭다”면서 “당시 베트남에서도 반(反)정부 시위가 있었지만, 그들은 특정 소수세력에 불과했다. 반면 지금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둘로 나뉜 것처럼 보인다”며 국론 분열 때문에 위기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이 “남재준 후보가 말한 안보 불감증은 평균적인 것 아니냐”며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이 갈수록 급증했는데 그게 바로 안보 위기를 느꼈기 때문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하자 남재준 후보는 고개를 저으며 “집회 참가자들만이 아니라 전 국민적 차원에서 볼 때 안보위기감이 희박하다”고 답했다.

“여태껏 보수는 행동을 안 해왔다. 속으로 걱정만 했는데, 이번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보수도 각성 및 행동하고 세력이 결집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안보 불감증은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국민 전반적인, 국자적 차원의 안보 불감증 이야기다.”


“탄핵 정국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국가적 차원의 안보 불감증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해소해야 하는 정치권의 혼돈도 문제였다.

2014년 5월 국정원장에서 물러난 뒤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남재준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은 최근의 국정 혼란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대선출마를 결심하게 된 때가 '최순실 논란'이 터진 뒤인 2016년 10월 말경이라고 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前대통령을 탄핵하면서 보여준 행태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야당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기 전에 뭐라 그랬느냐 하면 ‘촛불이 민심이니까 대통령 자리 그만둬라’고 했다. 여기서 한 술 더 떠가지고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군통수권 내놔라’는 말까지 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재준 후보는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 세간에서 논쟁이 분분하더라도 그것을 국회로 가져가서 합법적이고 절차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지, 그것을 길거리로 끌고 나와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국회를 내팽개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박근혜 前대통령 탄핵 자체가 오랫동안 기획된 ‘공작’이란 말도 있는데 탄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인보길 회장의 물음에 남재준 후보는 “탄핵 과정의 절차상 문제 때문에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지적했다.

“탄핵에 승복하느냐 불복하느냐를 따지기 전에 먼저 그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법이라는 것은 상식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다. 따라서 '탄핵'이라는 법적 절차를 진행할 때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갈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모든 국민이 알다시피 대한민국 사법체계는 죄형 법정주의, 즉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검찰이 기소를 하면 재판정에서 검찰, 변호사가 서로 다퉈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때 심증이 아닌 물증을 제출하고, ‘법 몇조 몇항에 의거해 유죄’라고 판결하는 것, 이게 정상적인 법 적용 아니냐. 하지만 이번 탄핵은 의혹은 제기됐는데, 확실한 증거가 없다.

또 하나는 탄핵 과정에서 나온 해괴한 단어들의 문제다. 예를 들어 '경제공동체'라는 단어가 형법 어디에 나오느냐. 이번 탄핵과 같은 논리라면, 공직자 부인이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남편도 처벌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연좌제를 적용했나. 이것은 죄형 법정주의를 비롯한 대한민국 사법원칙과 그 정신을 손상시켰다는 말이다.”

남재준 후보는 정치가 법 질서를 혼란케 하고, 이로 인해 국론이 양분된 현상, 생존까지 위협하는 국가안보 위기 상황을 그냥 바라볼 수만은 없어 '가시밭길'이 예상되더라도 대선에 직접 출마하기로 했다고 그 심정을 털어놨다.


"노무현 정부 때 靑민정수석실, 인사수석실 청탁·압력 있었다"

남재준 후보는 국민들 사이에서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인사압력을 뿌리친 사람"으로 뇌리에 각인돼 있다. 이때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많아서인지 남재준 후보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그의 육군 참모총장 재직 시절 노무현 정권 관계자들과의 일들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남재준 후보에게 당시 청와대에서 특정 인물을 장성으로 진급시키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재준 후보가 '원칙'을 내세운 덕분에 '청와대를 등에 업은 실세 대령'은 장성 진급을 못했다고 한다.

“그때 故노무현 前대통령이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서 ‘장군으로 진급시켜달라’고 말했다. 제가 ‘군 통수권자로서 명령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개인적으로 말씀 하시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개인적으로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저는 ‘그럼 이름을 말하지 마세요. 이름을 말하면 내가 그 사람을 진급 대상에서 뺄 겁니다’라고 답했다. 노무현 前대통령은 제 대답을 듣고 '설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름을 말씀하셔서 내가 전역할 때까지 그 사람은 진급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당시 그는 진급을 못했다.

남재준 후보는 2004년 11월 불거졌던 ‘육군 인사비리’와 한 때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무사 대령 진급 압력'에 대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군 인사법 개정 문제가 있었는데 국무회의에서 논의되는 법안을 보니까 1차 진급 후보자에 한해서만 다시 1차 진급에 도전할 수 있는, 이상한 내용으로 만들어 놨더다. 즉 중령에서 대령으로 1차 진급에 성공한 사람만이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할 때 1차 진급 대상자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5년만 지나면 군 인사는 엉망이 돼버린다. 그래서 제가 4시간동안 난리를 쳐서 그 법안을 무산시켰다.

그리고 당시 논란이 됐던 기무사 대령을 장성으로 진급시키라고 이야기한 대상은 내가 아

니라 송영근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다. 기무사 진급은 기무사령관이 결정한다.

당시 불거졌던 기무사 대령 진급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진급심사를 이미 다 마쳤는데, ‘장성 진급자 명단 5명을 바꾸라’는 지시가 청와대로부터 국방부를 통해 내려왔다. 이 명령대로면 심각한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당시 장군 50명 정도가 진급하는 상황에서 5명의 진급자를 바꾸면, 실제로는 진급해야 할 5명이 빠지고 진급못할 5명이 장군이 돼 10명에게 인사변동이 생긴다. 이는 수치로 20%에 해당하는 거다. 그래서 제가 ‘못 하겠다’고 거부했다. 그랬더니 소위 ‘육군 인사비리’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실 그전에 해군에서도 ‘무기명 인사비리 투서 사건’이 있었다. 투서를 보고 해군참모총장을 조사했는데 혐의가 없었다. 이때 노무현 前대통령이 ‘무기명 투서는 수사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육군에서 무기명 투서가 날아들자 이를 문제 삼아 재수사를 시작해 확대시킨 것이었다.”

남재준 후보는 “육군 인사비리로 그렇게 시끄러웠지만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었다. 당시 언론을 보면 나라가 몇 번 뒤집어진 것 같았지만 그 결과로 뭐가 나왔느냐”고 반문했다.

남재준 후보는 한때 돌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국방장관 제의설'도 이야기가 부풀려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 말을 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었고, 실제 한 말도 "4년 동안 참모총장 임기를 보장하고, 그 이후에는 플러스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바로잡았다.

이때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요구한 것이 남재준 후보가 극구 반대한, 군 인사법 개정안을 비롯한 '군 개혁법안'의 통과였다고 한다.

"그러더니 나중에 하는 이야기가 ‘임기 4년을 보장하는 대신 육군 장성들을 전부 다 물갈이 하라’였다. 뻔하지 않느냐. 장군 인사를 청와대가 요구하는대로 강요하면 그 결과가 어떻겠냐. 그래서 난 ‘못하겠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하자. 인사법을 바꾸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현행법을 따르므로 할 수 없다’며 버텼다.”

남재준 후보는 '육군 인시비리 파동'을 전후로 있었던 일도 이야기 해줬다.

“2004년 연말, 권진우 장군이 전화가 와서,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오늘 다 끝났으니까’라고 말했다. 권진우 장군은 아까 대통령께서 보고를 받으시고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냐, 사람 맞냐'고 했다고 내게 알려줬다”

결국 남재준 후보의 '뒤를 캤던' 청와대 관계자가 두 손을 들자, 노무현 前대통령은 “비리가 전혀 없으니 이만 끝내자”면서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을 신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언론에는 “盧대통령이 국군을 신임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故노무현 前대통령은 이처럼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남재준 후보는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에서 물러난 뒤까지 3년 동안 "귀하의 은행 계좌를 사정기관이 추적했다"는 통보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장담은 못하겠지만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비리조사 등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 가운데 한 명은 현재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문재인 前더불어 민주당 대표다.


“최순실? 내가 국정원장이었을 때 그런 이름 나오지도 않아” 

인보길 회장은 남재준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최순실을 알았다면, 권총 들고 청와대로 갔을 것”이라고 말했던 일을 언급하며 "국정원장 시절에 정말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못 들었느냐"고 물었다. 

남재준 후보는 웃으며 “제가 국정원장 하던 때에는 그런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지금의 국가정보원은 1970년대 중앙정보부가 아니다”고 답했다.

“시대가 바뀌면 군대도, 사회도 모두 바뀐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60년대 군복무를 한 분들은 군대에 가 있는 자기 자식들이 마치 자신들이 군 생활을 할 때처럼 고생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사회는 계속 변한다,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다 틀리다. ‘386 세대’가 이제는 ‘586 세대’로 변했듯이 모든 게 변한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국정원도 옛날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지금의 ‘국가정보원’이 서로 다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권의 주도로 국정원이 과거 안기부와 같이 활동할 수 없도록, 그 활동을 제약(制約)하기 위해 치밀하게 법을 만들었다.

즉 세간에서 ‘국정원장이니까 다 알지 않겠냐’고 생각하는대로 활동한다는 것은 옛날식으로 사회 전반에 대해 사찰을 한다는 뜻이 되고, 그 질문은 '국정원장이 왜 정치사찰을 안했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인보길 회장은 “그럼 박근혜 前대통령에서도 직접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는 거냐”고 묻자, 남재준 후보는 웃으며 “그런 말을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재차 밝혔다.

그는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 시절 때처럼 정보기관장이 대통령과 독대하고 밀담을 나누는 일은 이번 정부에서 없었다”면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 현황과 발전 방향에 대한 이야기, 현재 임무에 대해 토의를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겠다.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이 미행, 감청, 도청을 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사적관계를 알 수가 없다. 만약 최순실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만들 때처럼 활동을 했다면, 국정원에는 활동요원들이 있으니까 귀에는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제가 원장으로 있을 때는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저는 2014년 5월 초에 (국정원에서) 나왔고, 미르K·스포츠 재단이 설립된 2014년 10월이다.”

남재준 후보는 2014년 5월 국정원장에서 물러났다. 당시 세간에서는 ‘정윤회 문건 파문’과 관련해 조사를 하려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인보길 회장은 “그럼 국정원장 재직 때에는 최순실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거냐”고 재차 묻자, 남재준 후보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저를 몰아붙이면서 ‘너 국정원장 했는데 왜 몰라’라고 묻는다. 그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답했다.

“국정원장이 되기 전에 '최태민'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 아니냐”고 인보길 회장이 다시 묻자, 남재준 후보는 웃으며 “박근혜 前대통령께 '최태민'에 대해 직접 물어봤을 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하셨다. 나는 그 분이 했던 말을 신뢰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前대통령이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왔을 때, 저는 당원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안보 특보를 맡았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 '최태민'과 관련된 각종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에 안보특보 자리를 맡는 자리에서 박근혜 前대통령께 ‘최태민 이야기가 있던데 진실이 뭐냐’고 직접 물었다. 그러자 박근혜 前대통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 분의 말을 신뢰했다. 그래서 그 문제는 내 머리 속에서 지웠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인보길 회장은 “그렇다면 '최순실을 알았더라면 권총 들고라도 청와대를 찾아갔을 것'이라는 표현이, 자기 면책성 발언 아니면 알았더라면 적극적으로 막았을 것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재준 후보는 “제가 그 일을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했으면 권총이라는 표현까지 나왔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당시 제 말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손발 묶인 국정원이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남재준 후보는 국정원이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이라고 지적했다. 남재준 후보는 90년대 초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1993)’을 사례로 들면서 국정원이 처한 현실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여러분들, 포청천이라는 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명판관 포청천이 드라마 속에서처럼 행동했다고 치고 그를 대한민국 법에 따라 기소했다면, 아마 17가지 정도의 중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결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자백강요’에서부터 ‘과잉제재’, ‘함정수사’ 등 현행법에 따르면 무수히 많은 위법행위가 나타난다.

현재 국정원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실제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겠다. 국정원 직원이 ‘자네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질문했다가 개인 정보보호법 위반으로 8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게 현실이다.

따라서 ‘국정원이 왜 그것도 몰랐어’라는 말은 법을 어겨서라도 사회 곳곳을 들여다보라는 이야기로 밖에 안 들린다.

국정원장이라고 처자식이 있는 부하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런 시스템은 작동될 수도 없다.”

남재준 후보는 “국정원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 하고 제 기능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식물 국정원’을 정상화 하려면?

남재준 후보의 설명을 듣던 인보길 회장은 "대전복(對顚覆), 대테러 임무 등을 수행해야 하는데 과거보다 제약이 많은 정보기관이라면 ‘식물 국정원’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남재준 후보는 “국정원을 정상화 하려면 거의 모든 것을 재구성해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며 기관 설립취지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신기술을 만들면 산업 스파이 때문에 그 기술이 고스란히 중국 같은 곳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도 지금의 국정원은 기업을 출입하거나 관련 내사를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이 터진 이후에나 개입할 수 있지 그 이상의 활동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인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국정원의 활동마다 2중, 3중으로 차단장치를 해놔서 요원들이 활동할 수 없게 만들어 놨다. 이런 비정상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놔야 된다.

국가예산을 써서 만든 국정원이라면 ‘국가기능 유지’에 그만큼 필요하지 않겠느냐. 특히 대정부 전복, 대테러 같은 임무를 수행하려면 예방적, 선제적 활동이 가능해야 하는데, 관련 활동을 못하게 한다면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남재준 후보는 ‘세월호 참사가 국정원과 연루돼 있다’는 일각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전쟁이 발발하면 동원되는 3,000톤급 이상 선박들은 모두 2년에 한 번씩 보안 진단을 하게 돼 있는데, 단지 국정원이 점검했다는 사실만으로 국정원 소유 선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재준 후보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 해산, 종북척결부터"

인보길 회장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어떤 것을 제일 먼저 할 것인지 말해달라”고 묻자, 남재준 후보는 “국회 해산, 종북좌파 청산”이라고 답했다.

“종북좌파는 사회의 ‘암 덩어리’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정부와 사법부가 종북좌파에 대해 법을 엄격히 집행하지 않았다. 국가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에게 법을 엄격하게 집행했더라면 지금의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출마선언 때도 밝혔지만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세력들에게는 관련 법률을 엄격히 적용, 집행해야 한다.

한 예로 노조 활동도 정치 참여 등 원래 설립 취지를 벗어나면 불법 행위다. 그런 불법 활동을 지금도 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노사 간의 이면합의도 불법인데 통용되고 있다. 이런 불법·탈법 행위부터 법에 따라 철저히 엄단해야 한다.”

인보길 회장이 “그런 문제가 왜 이렇게 장기간 계속 성행했다고 생각하느나”고 묻자 남재준 후보는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전제한 뒤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개인적 이익, 정치는 타협이라는 명분 등을 내세우며 이런 저런 이유로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재준 후보는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종북척결과 함께 국회 해산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법으로는 국민 투표에 의한 국회해산을 사실상 할 수가 없다. 국회 해산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데 과연 현직 의원이 국회 해산 표결에 동의하겠는가.

2016년 11월 9일 박근혜 前대통령 탄핵안 가결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 국민들이 극심한 피로감을 얻는 상황에서 남재준 후보가 지적한 '국회 해산권 부활'은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남재준 후보는 대선 출마를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예비 등록비용을 냈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대선 출마 등록비용을 낼 것이라고 한다.

누가 묻더라, ‘보수 단일화를 해야 하는데 되지도 않을 사람이 왜 판을 쪼개냐’고, 하지만 난 관심 없다. 어차피 종북좌파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제가 살 수 있겠냐. 총살감 아니겠느냐.

저는 육군사관학교에서 한 번 전투를 시작했으면, 죽던가 아니면 승리해서 살던가 둘 중 하나라는 것을 배웠다. 중간에 되돌아가는 것을 배운 적은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거를 완주하겠다.”

남재준 후보는 “군인 시절 나의 신념은 정치의 중립은 지켜야 하지만, 정체성의 중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대선 출마는 대한민국 정체성 수호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현재 대선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 대부분은 '친중파'로 분류된다. 한국을 지키기 위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이 압력을 가하는 데에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고, 되려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대북제재보다는 대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정치인이 태반이다.

여야 후보 가운데 일부는 중국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미국과 일본에게만 큰 소리를 친다. 이런 후보들은 특히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전쟁-평화'라는 이분법적 논리만을 들이대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정치인은 '자유를 위한 투쟁'과 '평화로 위장한 굴복'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그렇고 그런 대선 후보들 가운데 남재준 후보는 '철저한 반중(反中)' 성향과 투철한 안보의식을 가진 후보로 돋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남재준 대통령 선거 후보는?

남재준 후보는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를 졸업, 육사 25기로 입학했다. 부인 김은숙 씨, 두 딸과 함께 서울 송파에 살고 있다.

1991년 준장으로 진급, 제1야전군 작전처장, 육군 보병학교 교수부장, 6사단장을 지냈다.

1997년 10월부터 1998년 4월까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지낸 뒤 수방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거쳐, 노무현 정권 때인 2003년 4월 7일부터 2005년 4월 7일까지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한시 등 한문에 능숙하다. 그래서인지 전역 후에도 손자병법, 육도삼략(六韜三略), 삼국사기, 삼국유사, 열국지, 춘추좌전(春秋左傳) 등의 병서와 역사서를 읽으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남재준 후보의 취미는 등산이다. 몸에 좋다고 등산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최전방 철책에서 지휘관으로 생활하며 병사들과 함께 걷다보니 취미가 됐다고 한다. 사회의 선입견과는 달리 골프를 쳐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잡기도 잘 못한다.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으로 전역한 뒤 충남대, 원광대, 서경대 등에서 군사학 강의를 하며 지냈다. 학생들은 남 내정자를 ‘훈장님’ ‘선비’ ‘할아버지’라 부르며 잘 따랐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원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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