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쉰 "中, 끝까지 출국 불허…폭군은 여전"

석방된 '천안문의 별' 류샤오보 끝내 사망… 세계 여론 분노, 中언론은 침묵

中관영매체들, 류샤오보 사망에는 '침묵'…中최대 포털·SNS서 검색도 안돼

노민호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07.14 1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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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中베이징 천안문 민주화 시위의 상징적 인물인 류사오보(劉曉波)가 결국 간암으로 숨졌다.

홍콩 ‘샹강01(香港01)’에 따르면, 13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은 "류사오보가 이날 오후 5시 35분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류사오보 담당 주치의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류사오보가 세상을 뜰 때 가족들이 그의 곁을 지켰다”면서 “류사오보는 큰 고통없이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홍콩 인권단체 ‘중국인권민주화운동 정보센터’는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刘霞) 등 가족들은 여전히 병원 바깥의 친족들과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병원 측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류샤와 다른 가족들은 그동안 中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지인들, 언론과의 접촉이 차단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이외의 나라에 있는 중화권 매체들은 류샤오보 사망을 애도하는 보도를 줄줄이 내놨다.

미국에 서버를 둔 매체 ‘보쉰(博訊)’은 ‘류샤오보 사망, 폭군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기사를 통해 “中당국은 류샤오보가 외국에서 자유롭게 생을 마감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보쉰’은 “현재 류샤오보의 사망에 대한 자유세계의 애도와 中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면서 “이에 자칭 '문명대국' 中정부가 다시 피고석에 앉았다”고 비난했다.

‘보쉰’은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에 한 네티즌은 ‘류샤오보는 사망했지만 오만한 폭군은 여전히 살아있다’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면서 “독재정권에 대한 원망이 들끓고 있다”고 전했다.

‘보쉰’은 “폭군을 전복시키는 수단은 아마도 혁명일 것”이라면서 “그러나 류샤오보는 ‘나는 적이 없다’며 중국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비폭력, 헌정, 대화를 주장했다”며 생전 그의 도덕성과 죽음을 애도했다.

서방 매체들도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을 속보로 타전하며 그를 추모하는 기사들을 내놨다.

英‘BBC’는 “중국의 가장 저명한 인권운동가이자 민주주의 수호자가 숨졌다”고 보도했다. 美‘뉴욕타임스(NYT)’는 “류샤오보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일한 중국인”이라고 불렀다.

반면 중국 본토에서는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中관영매체 ‘신화통신’, 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은 中정부의 보도통제로 모두 침묵했다.

다만 신화통신, CCTV, 인민일보 영문판은 “국가권력 전복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은 류사오보가 사망했다”고만 보도했다.

인민일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류샤오보 가족의 요청에 중국 의료진과 합류한 미국·독일의 암 전문가들은 ‘더 나은 대안은 없고, 중국 의료진들이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언급하는 등 中정부의 의도를 반영한 듯한 보도를 내놨다.

中정부의 미디어 통제는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도 마찬가지다. ‘류샤오보’로 검색하면 화면에 노출되는 가장 최근 기사가 지난 2월 16일자다.

중국에서 가장 있기 있는 소셜미디어 중 하나인 ‘시나 웨이보’에서 ‘류샤오보’를 검색하면 “관련 법규에 따라 류샤오보 관련 결과는 표시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1955년 中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작가, 변호사, 교수로 활동해왔다.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당시 허우더젠(侯德健), 저우둬(周舵), 가오신(高新) 등 지식인들과 함께 단식 투쟁을 벌여 ‘톈안먼 사군자’로 불리기도 했다.

류샤오보는 톈안먼 사태가 진압된 뒤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됐다가 1991년 풀려났다. 그러나 1995년 톈안먼 사태 재평가를 요구하다가 다시 구금됐다.

1996년에는 사회질서 교란죄로 3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류샤오보는 복역 중 수용소에서 아내 류샤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류샤오보는 2008년 12월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08 헌장’의 발표를 준비하던 중 中공안당국에 발각돼 다시 체포됐다. 결국 류샤오보는 국가전복 선동죄로 기소돼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류샤오보는 투옥 중이던 2010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접한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류샤오보가 중국의 근본적 인권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비폭력 투쟁을 해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옥중에 있던 류샤오보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류샤오보는 지난 5월 감옥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中정부는 6월 들어서야 류샤오보를 가석방, 그가 사망한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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